※크리스마스 합작에 참여한 소설입니다. :)
< 특별한 만남이. >
[마츠테루] / W.뺘뺘쀼쀼
(BGM. 조유진- Stay)
집 안은 한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현관 앞에서부터 시작 돼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방에 자리한 전신 거울 앞에서 머물렀다. 거울에 비치는 그가 사랑했던 나의 눈, 나의 입술, 나의 뺨, 나의 귀, 나의 목, 어깨, 팔, 가슴, 허리, 다리,,,,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유우지, 네가 그랬지? 전 남친이 내 피어싱들 마음에 안 드니까 헤어지자 했다고. 왜 그랬나 이해가 안 가. 이렇게나 예쁜데.”
원망했다. 싫었다. 다 뜯어내버리고 싶었다. 다 빼버렸다. 눈에 보이는 피어싱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얼굴로 보였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 늘어난 수에 더욱 눈물이 흘렀다. 앞을 볼 수 없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손에 쥐고 있던 피어싱들이 떨어졌다. 힘없이 떨어지는 피어싱들이 너무나도 작고 나약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저 기다리기 밖에 하지 못하는 하찮은,
나와 겹쳐 보였다.
한참을 울었을까, 고개를 들었을 땐 지금 당장 베란다로 나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의 한심한 사내가 주저앉아 있었다.
밥도 먹기 싫었다. 씻기도 귀찮고,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아... 그냥 침대로 기어 들어가 그대로 계속 잠만 잤다.
“테루시마...”
“...아, 후지무라...”
쫙-. 방안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하! 그건 내ㄱ,”
“내가 너 이런 꼴이나 보자고 연락도 안 되는 녀석 선물까지 사가며 이까지 온 줄 알아?”
“...그게 무슨,”
“나와.”
“뭐?”
“지금 당장, 침대에서 나와서 씻고 나가. 어디든 가. 최대한 사람이 많은 곳으로. 최대한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곳으로.”
“후지무라”
“유우지,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야. 너, 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야... 지금 니 꼴 좀 봐... 얼마나 한심한 꼴인지 좀 보라고...
선물은 거실에 두고 갈게. 내일, 다 같이 모이기로 했으니까 그땐 우리가 아는 테루시마 유우지로 돌아와. 나 갈게.“
후지무라가 나가고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맞다. 지금의 나는, 테루시마 유우지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브...라...12월 24일 인가... 어......... 두달. 딱 두달인 거 같다.
“하하. 후지무라한테 그런 말을 들을 만 하네... 두달 동안이나 저 안에 있었다니...”
한없이 많은 꿈을 꿨다.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용서고 하고, 헤어지기도, 재결합을 하기도,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은 내가 죽어버렸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 그 자식에게.
그래, 이제 정리를 할 때도 됐지.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는 법.
오랜만에 씻기 위해 화장실을 향했다. 머리에 샴푸를 하기도 힘들고, 세수도 다섯 번이나 하고, 양치도 세 번이나 하고, 몸도 구석구석 열심히 닦았다.
그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을 지워버리듯이 씻고 또 씻었다. 까맣게 더러워 보이기만 했던 곳곳이 하얗게 깨끗해짐을 느꼈다.
화장실을 나오자 느껴지는 답답한 공기. 물기를 닦지도 않고 창문을 열었다. 그의 추억들이 뭉쳐진 공기 덩어리가 다 빠져 나간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게 더 컸다.
나갔다가 미용실을 먼저 가야할 거 같다. 크리스마스이브라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한군데 정도는 하겠지. 옷장을 여니 먼지가 푹 달려든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아끼던 옷들을 찾아 입었다.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다 후지무라가 두고 간 선물이 생각났다.
“하하”
가지각색의 피어싱들. 우습게도 포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선물 받은 피어싱들을 들고 거울 앞으로 갔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구멍에 맞춰 넣었다. 그 녀석과 사귄 후에 만든 구멍에는 일부러 끼우지 않았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힘차게 문을 열어 재꼈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바람이 훅 끼쳤다. 날리는 머리카락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뭔가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더 활짝 웃고, 신나게 걸음을 떼고, 아파트를 벗어나 번화가까지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미용실로 들어가 머리를 자르고, 탈색을 하고, 내 자신감의 원천이었던 머리 모양도 만들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공기를 마시니 한층 업 된 기분이다.
“거기 멋진 형! 여기 좀 와 봐요~ 오늘 물 좋아~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에이 알면서~~”
밖으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웨이터의 웃음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 와본 이곳에서 딱 느낀 건,
시끄럽다.
어지러워.
귀 아파.
당장이라도 나가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의 이성은 생각보다 나약했다.
나의 마음보다도 시끄럽게 울리는 파동에 잠잠해진 듯 했고, 제 각각 자신을 표출을 해대는 사람들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기겠어.
원래 소리가 더 큰 사람이, 머리수가 더 많은 쪽이, 이기는 거랬잖아. 내가 이길 수가 없지. 그리고 난 오늘, 예전의 날 되찾기 위해, 한심하기만 했던 지난 2달간의 모습을 벗어던지기 위해 최대한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온 것이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려온 곳이 게이들만 오는 클럽이었다는 건 몰랐지만 뭐 어때? 나 게이 맞으니까 상관없지 않아??
“혼자 오셨나봐요??”
큰 키에 꽤나 훤칠한 외모. 짙지만 아래로 내려간 눈썹, 졸린 듯 보이지만 위로 올라간 섹시한 눈매, 댄디한 옷 스타일.
“저는 마츠카와예요. 마츠카와 잇세이.”
“아, 저는 테루시마 유우지예요.”
“하하. 이름이 그쪽이랑 굉장히 잘 어울리는 느낌이네요.”
맞물린 손이 떨려온다.
‘이름이 너무 예뻐. 너랑 잘 어울려. 개구지면서 조용하고 예쁘면서 멋있잖아.’
눈이 아래로 깔린다.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숨이 턱 막혀온다.
“아, 저기. 제가 마음에 안 드시ㅁ...”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저... 죄송합니다...”
도저히 그 공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고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연락하고 오자고 했잖아.”
“아니 어차피 해봤자 안 되는 거 뭐 하러 하냐고”
“맞아 어차피 연락 해봤자 씹혔을 거야”
“에이 아니지 그래도 연락은 하고 오는 게 좋았으려나...”
“하...후지무라랑 루나한테라도 얘기할 걸 그랬어...”
웬일로 우리 집 앞이 수다스럽다 했더니 축제 팀 친구들이 다 모여 있었다.
“다들 웬일이야??”
“오!! 테루시마!!!!”
“여어~~~~~”
“욥!!!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이 새끼야 벌써 크리스마스다 이놈아!!”
“에헤이~ 우리 주장한테 그렇게 개떼같이 몰려들면 안 되지요~~”
“뭐래. 추우니까 빨리 문이나 열어. 빨리 빨리.”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치는 녀석들. 허. 하고 헛웃음을 짓다가도 신발을 벗으려 시선을 내리니 보이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은 보니 싫지 않은 미소가 지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 주는 건 너희들이구나.’
“야야 테루시마. 집 꼬라지가 이게 뭐냐?”
“아, 신경 쓰지 마. 한동안 청소를 못 했어.”
“야. 근데 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이냐??”
“어...?”
“맞아 맞아. 야야 주장이 그러고 있으면 되겠냐??”
“아이 씨ㅂ, 그놈의 주장 소리. 야!! 우리 벌써 23이야!!”
“아! 뭐!! 그래도 한번 주장은 영원한 주장이지!!! 크리스마슨데 그 정도도 못 봐 주냐!!”
“아니 그건 상관 없는데 테루시마 표정 안 좋아 보이잖냐...니 때문이야 이자식아”
“뭐? 그게 왜 나때ㅁ...”
“아아아아아 시끄러 시끄러 일단 앉아 봐봐. 자자! 놀자!!!!!!!!!! 후우~~~!!!!”
정신없이 시작 된 술판. 죠젠지에서 배구부로 있을 때의 얘기부터 서로의 대학 생활 얘기, 계속 배구를 하고 있던 녀석들의 얘기, 녀석들의 연인들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왔다 갔다.
“자, 그래서 우리 주장님.”
“에?”
“왜 이렇게 힘이 없으신 거죠??”
“왜 이렇게 말이 없나요??”
“왜 이렇게 조용한 거죠??”
“왜 이렇게 집이 더럽죠??”
“왜 이렇게...야 솔직히 그건 아니다 집이 더럽냐니. 니 집만 하겠냐?”
“아이, 내 집이 뭐 어때서!!”
“아 지금 그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바보들아!!”
“맞아! 저거 봐!! 테루시마의 어깨가 처졌다고!!!!!!!!”
시선이 집중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기만 하던 시간이 끝나버렸고, 저들에겐 부정당했다.
“아냐. 나 되게 ㅈ...”
“시끄러.”
“웃기지 마”
“야. 우리가 1년 2년 보냐?”
“이 새끼 이거 왜 이렇게 나약해진거야?”
“빨리 얘기 시작하지? 하나. 둘. 셋. 시작.”
그러곤 다시 조용해진 집 안. 익숙해 진 줄 알았던 집안의 고요함이 저들의 시선에서 불편해진다.
“그게...2달 전에...남친이랑 헤어졌는데...”
“...”
“...일이...좀...그게...어... 좀 안 좋게 끝나서...”
“어떻게 안 좋게 끝났는데??”
“맞아. 그렇게 좋아 죽더니 아주.”
“깨가 쏟아지더구만 아주 그냥.”
“그게...그 새끼가...”
결국은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무에게도 얘기 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의 악몽을 토해냈다. 몇은 그 놈을 욕해주느라 바빴고, 몇은 인상을 쓰며 술을 들이마시느라 바빴고, 몇은 나를 안아주느라, 나를 다독여 주느라 바빴다.
“...그리고...오늘 클럽에 갔었는데... 그 놈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어. 그 새끼 생각나서 도망 나와 버렸는데 계속 생각이 나... 나 진짜 정신 못 차렸지... 그런 놈한테 그런 짓을 당하고도 그런 놈한테 끌리다니...”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더 훌쩍이다가 잠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리는 싹 다 돼있었고, 쪽지만 남겨져 있었다.
- 오늘 모임에는 안 와도 돼. 대신 어제 갔던 그 클럽에 가. 아니 어제 그 사람 꼭 만나서 같이 와. 안 그러면 안 만나준다. 베~~~~~~~
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어이! 억지로 힘내려고 하지마!!! 억지로 웃지도 마!!!! -
“하하”
겉옷을 챙겨들고 무작정 그 클럽으로 갔다.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가보고 싶었다. 혼자서는 고민만 하다 그만 뒀겠지만, 녀석들이 주고 간 용기가 있는데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지.
“하아. 하아.”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그 사람을 찾았다. 이름이.............. 잇세이.... 잇세이.... 마... 뭐였는데... 뭐더라...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것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는 역시 무모한 짓이었나. 이제 여기만 찾아보면 다 찾아 본거다.
“마츠카와 잇세이!!”
아무도 없었다.
하하.
예상했던 결과다. 역시,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고개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빨리 나가서 다른 곳도 더 찾아봐야겠지만 이미 의욕을 다 상실해 버렸는지 이곳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걸을 힘도 남아나지 않았다. 제자리에 서서 계속 울어버렸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상한 사람 취급했지만 상관없었다.
“어, 테루시마...였나?”
한번 밖에 안 들어 봤지만 귀에 박혀버린 목소리. 내가 이토록 그리던 사람이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에게 달려들어 안아버렸다.
“유우지. 유우지예요 내 이름. 테루시마 유우지.”
어딘가 답답하고 먹먹했던 한 구석이 시원해졌다. 가벼워볐다.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다신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도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욱 꽉 안았다.
그도 꺼내지 않은 나의 마음에 대답해 주듯 꼭 안아줬다.
“이제야 들었네요. 이름.”
크리스마스는 정말 신기하다.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만들며 움직이게 만들고, 없는 용기도 생기게 해 준다. 그리고, 특별히 뭔가를 하려 하지 않아도 특별하고 근사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어떤 사람에겐 희망을, 어떤 사람에겐 추억을, 어떤 사람에겐 사랑을, 선물 해준다.
“ ”메리 크리스마스“ ”
< 특별한 만남이. >
[마츠테루] / W.뺘뺘쀼쀼
(BGM. 조유진- Stay)
집 안은 한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현관 앞에서부터 시작 돼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방에 자리한 전신 거울 앞에서 머물렀다. 거울에 비치는 그가 사랑했던 나의 눈, 나의 입술, 나의 뺨, 나의 귀, 나의 목, 어깨, 팔, 가슴, 허리, 다리,,,,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유우지, 네가 그랬지? 전 남친이 내 피어싱들 마음에 안 드니까 헤어지자 했다고. 왜 그랬나 이해가 안 가. 이렇게나 예쁜데.”
원망했다. 싫었다. 다 뜯어내버리고 싶었다. 다 빼버렸다. 눈에 보이는 피어싱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얼굴로 보였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 늘어난 수에 더욱 눈물이 흘렀다. 앞을 볼 수 없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손에 쥐고 있던 피어싱들이 떨어졌다. 힘없이 떨어지는 피어싱들이 너무나도 작고 나약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저 기다리기 밖에 하지 못하는 하찮은,
나와 겹쳐 보였다.
한참을 울었을까, 고개를 들었을 땐 지금 당장 베란다로 나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의 한심한 사내가 주저앉아 있었다.
밥도 먹기 싫었다. 씻기도 귀찮고,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아... 그냥 침대로 기어 들어가 그대로 계속 잠만 잤다.
“테루시마...”
“...아, 후지무라...”
쫙-. 방안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하! 그건 내ㄱ,”
“내가 너 이런 꼴이나 보자고 연락도 안 되는 녀석 선물까지 사가며 이까지 온 줄 알아?”
“...그게 무슨,”
“나와.”
“뭐?”
“지금 당장, 침대에서 나와서 씻고 나가. 어디든 가. 최대한 사람이 많은 곳으로. 최대한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곳으로.”
“후지무라”
“유우지,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야. 너, 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야... 지금 니 꼴 좀 봐... 얼마나 한심한 꼴인지 좀 보라고...
선물은 거실에 두고 갈게. 내일, 다 같이 모이기로 했으니까 그땐 우리가 아는 테루시마 유우지로 돌아와. 나 갈게.“
후지무라가 나가고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맞다. 지금의 나는, 테루시마 유우지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브...라...12월 24일 인가... 어......... 두달. 딱 두달인 거 같다.
“하하. 후지무라한테 그런 말을 들을 만 하네... 두달 동안이나 저 안에 있었다니...”
한없이 많은 꿈을 꿨다.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용서고 하고, 헤어지기도, 재결합을 하기도,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은 내가 죽어버렸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 그 자식에게.
그래, 이제 정리를 할 때도 됐지.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는 법.
오랜만에 씻기 위해 화장실을 향했다. 머리에 샴푸를 하기도 힘들고, 세수도 다섯 번이나 하고, 양치도 세 번이나 하고, 몸도 구석구석 열심히 닦았다.
그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을 지워버리듯이 씻고 또 씻었다. 까맣게 더러워 보이기만 했던 곳곳이 하얗게 깨끗해짐을 느꼈다.
화장실을 나오자 느껴지는 답답한 공기. 물기를 닦지도 않고 창문을 열었다. 그의 추억들이 뭉쳐진 공기 덩어리가 다 빠져 나간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게 더 컸다.
나갔다가 미용실을 먼저 가야할 거 같다. 크리스마스이브라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한군데 정도는 하겠지. 옷장을 여니 먼지가 푹 달려든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아끼던 옷들을 찾아 입었다.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다 후지무라가 두고 간 선물이 생각났다.
“하하”
가지각색의 피어싱들. 우습게도 포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선물 받은 피어싱들을 들고 거울 앞으로 갔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구멍에 맞춰 넣었다. 그 녀석과 사귄 후에 만든 구멍에는 일부러 끼우지 않았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힘차게 문을 열어 재꼈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바람이 훅 끼쳤다. 날리는 머리카락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뭔가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더 활짝 웃고, 신나게 걸음을 떼고, 아파트를 벗어나 번화가까지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미용실로 들어가 머리를 자르고, 탈색을 하고, 내 자신감의 원천이었던 머리 모양도 만들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공기를 마시니 한층 업 된 기분이다.
“거기 멋진 형! 여기 좀 와 봐요~ 오늘 물 좋아~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에이 알면서~~”
밖으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웨이터의 웃음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 와본 이곳에서 딱 느낀 건,
시끄럽다.
어지러워.
귀 아파.
당장이라도 나가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의 이성은 생각보다 나약했다.
나의 마음보다도 시끄럽게 울리는 파동에 잠잠해진 듯 했고, 제 각각 자신을 표출을 해대는 사람들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기겠어.
원래 소리가 더 큰 사람이, 머리수가 더 많은 쪽이, 이기는 거랬잖아. 내가 이길 수가 없지. 그리고 난 오늘, 예전의 날 되찾기 위해, 한심하기만 했던 지난 2달간의 모습을 벗어던지기 위해 최대한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온 것이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려온 곳이 게이들만 오는 클럽이었다는 건 몰랐지만 뭐 어때? 나 게이 맞으니까 상관없지 않아??
“혼자 오셨나봐요??”
큰 키에 꽤나 훤칠한 외모. 짙지만 아래로 내려간 눈썹, 졸린 듯 보이지만 위로 올라간 섹시한 눈매, 댄디한 옷 스타일.
“저는 마츠카와예요. 마츠카와 잇세이.”
“아, 저는 테루시마 유우지예요.”
“하하. 이름이 그쪽이랑 굉장히 잘 어울리는 느낌이네요.”
맞물린 손이 떨려온다.
‘이름이 너무 예뻐. 너랑 잘 어울려. 개구지면서 조용하고 예쁘면서 멋있잖아.’
눈이 아래로 깔린다.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숨이 턱 막혀온다.
“아, 저기. 제가 마음에 안 드시ㅁ...”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저... 죄송합니다...”
도저히 그 공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고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연락하고 오자고 했잖아.”
“아니 어차피 해봤자 안 되는 거 뭐 하러 하냐고”
“맞아 어차피 연락 해봤자 씹혔을 거야”
“에이 아니지 그래도 연락은 하고 오는 게 좋았으려나...”
“하...후지무라랑 루나한테라도 얘기할 걸 그랬어...”
웬일로 우리 집 앞이 수다스럽다 했더니 축제 팀 친구들이 다 모여 있었다.
“다들 웬일이야??”
“오!! 테루시마!!!!”
“여어~~~~~”
“욥!!!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이 새끼야 벌써 크리스마스다 이놈아!!”
“에헤이~ 우리 주장한테 그렇게 개떼같이 몰려들면 안 되지요~~”
“뭐래. 추우니까 빨리 문이나 열어. 빨리 빨리.”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치는 녀석들. 허. 하고 헛웃음을 짓다가도 신발을 벗으려 시선을 내리니 보이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은 보니 싫지 않은 미소가 지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 주는 건 너희들이구나.’
“야야 테루시마. 집 꼬라지가 이게 뭐냐?”
“아, 신경 쓰지 마. 한동안 청소를 못 했어.”
“야. 근데 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이냐??”
“어...?”
“맞아 맞아. 야야 주장이 그러고 있으면 되겠냐??”
“아이 씨ㅂ, 그놈의 주장 소리. 야!! 우리 벌써 23이야!!”
“아! 뭐!! 그래도 한번 주장은 영원한 주장이지!!! 크리스마슨데 그 정도도 못 봐 주냐!!”
“아니 그건 상관 없는데 테루시마 표정 안 좋아 보이잖냐...니 때문이야 이자식아”
“뭐? 그게 왜 나때ㅁ...”
“아아아아아 시끄러 시끄러 일단 앉아 봐봐. 자자! 놀자!!!!!!!!!! 후우~~~!!!!”
정신없이 시작 된 술판. 죠젠지에서 배구부로 있을 때의 얘기부터 서로의 대학 생활 얘기, 계속 배구를 하고 있던 녀석들의 얘기, 녀석들의 연인들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왔다 갔다.
“자, 그래서 우리 주장님.”
“에?”
“왜 이렇게 힘이 없으신 거죠??”
“왜 이렇게 말이 없나요??”
“왜 이렇게 조용한 거죠??”
“왜 이렇게 집이 더럽죠??”
“왜 이렇게...야 솔직히 그건 아니다 집이 더럽냐니. 니 집만 하겠냐?”
“아이, 내 집이 뭐 어때서!!”
“아 지금 그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바보들아!!”
“맞아! 저거 봐!! 테루시마의 어깨가 처졌다고!!!!!!!!”
시선이 집중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기만 하던 시간이 끝나버렸고, 저들에겐 부정당했다.
“아냐. 나 되게 ㅈ...”
“시끄러.”
“웃기지 마”
“야. 우리가 1년 2년 보냐?”
“이 새끼 이거 왜 이렇게 나약해진거야?”
“빨리 얘기 시작하지? 하나. 둘. 셋. 시작.”
그러곤 다시 조용해진 집 안. 익숙해 진 줄 알았던 집안의 고요함이 저들의 시선에서 불편해진다.
“그게...2달 전에...남친이랑 헤어졌는데...”
“...”
“...일이...좀...그게...어... 좀 안 좋게 끝나서...”
“어떻게 안 좋게 끝났는데??”
“맞아. 그렇게 좋아 죽더니 아주.”
“깨가 쏟아지더구만 아주 그냥.”
“그게...그 새끼가...”
결국은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무에게도 얘기 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의 악몽을 토해냈다. 몇은 그 놈을 욕해주느라 바빴고, 몇은 인상을 쓰며 술을 들이마시느라 바빴고, 몇은 나를 안아주느라, 나를 다독여 주느라 바빴다.
“...그리고...오늘 클럽에 갔었는데... 그 놈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어. 그 새끼 생각나서 도망 나와 버렸는데 계속 생각이 나... 나 진짜 정신 못 차렸지... 그런 놈한테 그런 짓을 당하고도 그런 놈한테 끌리다니...”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더 훌쩍이다가 잠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리는 싹 다 돼있었고, 쪽지만 남겨져 있었다.
- 오늘 모임에는 안 와도 돼. 대신 어제 갔던 그 클럽에 가. 아니 어제 그 사람 꼭 만나서 같이 와. 안 그러면 안 만나준다. 베~~~~~~~
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어이! 억지로 힘내려고 하지마!!! 억지로 웃지도 마!!!! -
“하하”
겉옷을 챙겨들고 무작정 그 클럽으로 갔다.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가보고 싶었다. 혼자서는 고민만 하다 그만 뒀겠지만, 녀석들이 주고 간 용기가 있는데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지.
“하아. 하아.”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그 사람을 찾았다. 이름이.............. 잇세이.... 잇세이.... 마... 뭐였는데... 뭐더라...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것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는 역시 무모한 짓이었나. 이제 여기만 찾아보면 다 찾아 본거다.
“마츠카와 잇세이!!”
아무도 없었다.
하하.
예상했던 결과다. 역시,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고개도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빨리 나가서 다른 곳도 더 찾아봐야겠지만 이미 의욕을 다 상실해 버렸는지 이곳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걸을 힘도 남아나지 않았다. 제자리에 서서 계속 울어버렸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상한 사람 취급했지만 상관없었다.
“어, 테루시마...였나?”
한번 밖에 안 들어 봤지만 귀에 박혀버린 목소리. 내가 이토록 그리던 사람이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에게 달려들어 안아버렸다.
“유우지. 유우지예요 내 이름. 테루시마 유우지.”
어딘가 답답하고 먹먹했던 한 구석이 시원해졌다. 가벼워볐다.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다신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도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욱 꽉 안았다.
그도 꺼내지 않은 나의 마음에 대답해 주듯 꼭 안아줬다.
“이제야 들었네요. 이름.”
크리스마스는 정말 신기하다.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만들며 움직이게 만들고, 없는 용기도 생기게 해 준다. 그리고, 특별히 뭔가를 하려 하지 않아도 특별하고 근사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어떤 사람에겐 희망을, 어떤 사람에겐 추억을, 어떤 사람에겐 사랑을, 선물 해준다.
“ ”메리 크리스마스“ ”